빚 2천만원에
10억짜리 여관이
여덟 번 유찰됐습니다
근저당도 유치권도 없습니다. 등기부에 적힌 빚은 2,000만원 하나뿐입니다. 그 2천만원 때문에 감정 9억 9,978만원짜리 숙박시설이 5,763만원까지 내려왔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왜 아무도 안 살까요.
강원 정선군 고한읍. 대지 1,402㎡,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1,247.9㎡. 2008년 3월 사용승인. 1~3층은 여관, 4층은 다가구주택입니다. 2024년 12월 강제경매가 접수돼 2025년 11월 첫 입찰에 부쳐졌고, 여덟 번 모두 아무도 쓰지 않았습니다.
① 청구금액이 2,000만원입니다
등기부가 이례적으로 단순합니다. 소유권 하나, 강제경매 기입 하나가 전부입니다. 근저당권이 없습니다. 은행 빚이 없다는 뜻입니다. 가압류도, 유치권 신고도, 선순위 임차인도 없습니다.
| 권리 | 채권액 | 배당 |
|---|---|---|
| 경매비용 | — | 210만원 |
| 강제경매(개인) | 2,000만원 | 2,000만원 |
| 합계 | 2,000만원 | 2,210만원 |
2,210만원. 이 돈만 갚았으면 경매는 그날로 끝났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이 감정가의 94%가 증발했습니다. 경매를 부르는 건 큰 빚이 아닙니다. 갚을 수 있었던 작은 빚을 방치한 시간입니다.
② 여덟 번의 계단
유찰될 때마다 최저가가 30%씩 깎였습니다. 9억 9,978만 → 6억 9,990만 → 4억 8,990만 … 여덟 번째에 5,763만원입니다. 1억 밑으로 내려온 것이 일곱 번째부터였는데, 그 가격에도 입찰자가 없었습니다.
③ 겉은 멀쩡합니다
감정평가서에 붙은 사진입니다. 산비탈에 4층, 외벽은 드라이비트 마감, 창호는 플라스틱 2중창. 무너진 곳도, 불에 탄 흔적도 없습니다. 사진만 보면 «5,763만원짜리»로 보이지 않습니다.
④ 그런데 안이 비어 있습니다
객실에 침대도,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없습니다. 바닥은 전면이 오염됐고 욕실은 배관이 드러나 있습니다.
다만 폐허는 아닙니다. 복도 조명은 켜져 있고 화재감지기도 붙어 있습니다. 층마다 상태가 달라서 비교적 멀쩡한 객실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집기가 전부 빠진 빈 건물입니다.
숙박업을 해보신 분은 이 사진의 의미를 아실 겁니다. 객실 하나를 다시 채우는 데 드는 돈 말입니다. 침구·가구·가전·도배·바닥·욕실 설비까지, 여관 한 실을 되살리는 비용은 낙찰가와 같은 단위로 붙습니다. 5,763만원은 건물값이지, «오늘 당장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여관»의 값이 아닙니다.
⑤ 감정평가사도 이미 적어놨습니다
감정평가서 산출근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 «건물은 장기간 방치된 점, 현상 및 관리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하되 관찰감가를 병용하였음.»
숫자로도 그렇게 했습니다. 2008년 준공이니 실제 경과는 16년인데 유효경과연수를 26년으로 잡았습니다. 10년을 더 늙은 것으로 친 겁니다. ㎡당 재조달원가도 120만원을 적용했는데, 한국부동산원 신축단가표의 여관은 3급 152만원·4급 137만원입니다. 가장 낮은 등급보다 더 낮게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감정가 10억 자체가 이미 깎을 만큼 깎은 값이었고, 시장은 거기서 다시 94%를 깎았습니다.
⑥ 최저가는 땅값의 19%입니다
토지 1,402㎡가 3억 143만원(㎡당 21만 5천원, 평당 71만원), 건물이 6억 9,767만원입니다. 최저가 5,763만원은 토지 감정가의 19.1%, 건물을 0원으로 쳐도 땅값의 5분의 1입니다.
다만 그 땅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1,402㎡ 중 906㎡는 지목이 «전», 곧 밭입니다. 현황은 건물이 올라앉은 부지지만 공부상으로는 농지입니다. 감정사도 개별요인에서 «행정적조건(일부 지목 등)에서 열세»라며 표준지 대비 0.960을 곱했습니다.
⑦ 정선에서는 이게 예외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그 답이 감정평가서 안에 이미 있었습니다. 감정사가 «경매 동향»으로 인용한 통계입니다.
| 정선군 숙박시설 경매 (2024.02~2025.01) | 값 |
|---|---|
| 진행 건수 | 18건 |
| 낙찰 건수 | 3건 (16.7%) |
| 총 감정가 | 36억 6,055만 |
| 총 낙찰가 | 10억 7,494만 |
| 낙찰가율 | 29.4% |
여섯 건 중 다섯 건이 안 팔리고, 팔려도 감정가의 30% 언저리입니다. 이 물건이 유별난 게 아니라 정선의 숙박 경매가 원래 그렇습니다.
시장 쪽도 봤습니다. 우리 관광 원장으로 계산하면 정선의 외지 방문객은 2026년 1~6월에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7% 줄었습니다. 전국 242개 시군 합계는 −0.2%인데 정선은 하위 11위입니다. 같은 기간 정선의 거주 인구 이동은 −0.9%에 그쳤으니, 살던 사람은 그대로인데 오던 사람이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방은 그대로입니다. 숙박업 원장에 등록된 고한읍 숙박시설 42곳 중 폐업은 단 1곳이고, 나머지 41곳이 객실 1,999실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중 989실(49%)이 대형 리조트·콘도 세 곳에 몰려 있습니다. 객실 스무 개 안팎으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이 물건의 자리였습니다.
다만 «관광객이 줄어서»만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같은 기간 다섯 번 넘게 유찰된 숙박·펜션이 전국에 열다섯 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제군의 펜션입니다. 인제의 외지 방문객은 +32.0%로 242개 시군 중 증가율 1위인데, 그곳 펜션도 일곱 번 유찰돼 감정가의 8%입니다. 지역 수요는 이유의 일부일 뿐이고, 물건마다 다시 열 수 있는 상태인가가 따로 있습니다.
⑧ 입찰하신다면 확인할 것
감정평가서 사진 마지막 장이 이겁니다. 정선소방서가 출입구에 붙여둔 안내문입니다. 요지는 소유·점유가 바뀌면 새 관계인이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신고와 소방시설 자체점검 의무를 진다는 것입니다. 낙찰받는 순간 그 의무가 낙찰자에게 옵니다.
감정평가서에 남은 다른 단서들도 그대로 옮깁니다.
| 항목 | 감정평가서 기재 |
|---|---|
| 설비 | 위생·급배수·난방·승강기 있음. «정상 작동 여부는 경매진행시 재확인 요함» |
| 공부와 현황 | «현황 내부 일부는 건축물현황도와 다소 상이함» |
| 용도 | 1~3층 여관 / 4층은 다가구주택 |
| 토지이용 | 계획관리지역 · 폐광지역진흥지구 · 가축사육제한구역 · 폐기물매립시설 설치제한지역 |
| 임대관계 | «미상» |
여덟 번 유찰된 사건은 공고를 반드시 다시 보셔야 합니다. 기일이 바뀌거나 취하될 수 있고, 법원이 특별매각조건을 붙여 보증금이 최저가의 10%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공시된 보증금이 최저가보다 큽니다. 최저가·보증금·기일은 입찰 당일 법원 공고로 확인하십시오.
이 물건이 싼 이유는 건물이 낡아서가 아닙니다. 감정평가사는 이미 «장기간 방치»로 보고 10년 더 감가했고, 그러고도 시장은 94%를 더 깎았습니다. 경매로 숙박업에 들어오실 때 감정가 대비 몇 %인지보다 먼저 보실 것은 사진 속 객실을 다시 채우는 데 얼마가 드는가입니다. 낙찰가는 시작이고, 진짜 비용은 그 뒤에 붙습니다.
빚 2,000만원이 10억을 5,763만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땅값의 19%인데도 여덟 번 비었고, 정선의 숙박 경매는 원래 여섯 중 다섯이 안 팔립니다. 값을 정하는 건 감정가가 아니라 «다시 열 수 있는가»입니다.
개인인 소유자·채권자의 이름과 사진 속 차량 번호판은 가렸습니다. 입찰 전 최저가·보증금·기일은 법원 공고로 다시 확인하십시오.
관련 자료▶ 지난 경공매 분석 모음 : https://kiudalab.com/news
▶ 숙박업필수커뮤니티(사업자 1,321명) : https://open.kakao.com/o/gDafkS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