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던 50억 호텔,
은행은 «빚»을 팝니다
공매가 일곱 번 유찰되면 은행은 건물 파는 걸 멈추고 그 건물에 물린 채권을 내놓습니다. 저희가 지금 실제로 한 건을 검토하면서 이 구조를 서류로 전부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감정 50억짜리가 27억에 정리되는지, 그 톱니바퀴를 열어봅니다.
이 글은 저희가 실제 검토 중인 수도권 숙박시설 한 건에서 나온 구조를 일반화한 것입니다. 물건이 특정되지 않도록 지역·상호는 밝히지 않고 금액은 반올림했습니다. 신탁계약서·수익권증서·감정평가서·공매 공고문을 직접 읽고 썼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① 숙박 공매는 «낙찰»이 아니라 «유찰»이 기본값입니다
저희가 수집해 온 온비드 숙박시설 공매 물건 662곳을 세어봤습니다. 76%가 다섯 번 이상 유찰됐고, 39%는 열 번 이상입니다. 그리고 절반이 넘는 53%가 지금 «수의계약 가능» 상태로 걸려 있습니다 — 입찰로는 안 팔려서, 먼저 손드는 사람에게 팔겠다고 열어둔 상태라는 뜻입니다.
가격도 같이 무너집니다. 세 번 이상 유찰된 548곳의 최저입찰가는 평균 감정가의 48%까지 내려가 있었고, 절반 이하로 깎인 물건이 54%입니다. 숙박시설 공매 시장은 «싸게 사는 곳»이기 전에, 안 팔리는 곳입니다.
② 법원경매와 신탁공매는 다른 게임입니다
여기서 갈림길 하나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망한 숙박시설이 시장에 나오는 길은 두 갈래인데, 규칙을 정하는 주체가 다릅니다. 법원경매는 민사집행법이 정하고, 신탁공매는 신탁계약서가 정합니다. 법이 아니라 계약서가 규칙인 시장이라, 계약서를 안 읽으면 규칙을 모르는 채 게임에 들어가는 겁니다.
| 법원경매 | 신탁공매 | |
|---|---|---|
| 규칙 | 민사집행법 | 신탁계약서 |
| 가격 체감 | 유찰마다 20~30% | 통상 10%씩 (계약마다 다름) |
| 명도 | 인도명령 (빠름) | 명도소송 (계약상 명도의무 조항 확인) |
| 유찰 뒤 | 다음 기일 | 직전 가격으로 수의계약 가능 |
| 토지거래허가 | 면제 (법에 명시) | 면제 조항 없음 — 확인 필요 |
③ 10%씩 깎이는 계단, 그리고 은행의 딜레마
저희가 검토한 물건의 신탁계약서는 «유찰 시 직전 예정가격의 10% 체감»이었습니다. 감정 50억이면 일곱 번째에 26억대까지 내려옵니다. 법원경매의 30% 계단(경기 기준)보다 완만하지만,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은행이 딜레마에 빠집니다. 일곱 번을 돌려 30억까지 내렸는데도 안 팔렸다면? 공고를 새로 내면 감정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또 몇 달이 가고, 그 사이 연체이자는 쌓이고 건물은 방치됩니다. 그래서 은행은 건물 파는 걸 멈추고 다른 물건을 꺼냅니다 — 채권입니다.
④ «건물»이 아니라 «빚»을 산다는 것
저희가 검토한 건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은행이 이 건물을 담보로 빌려준 돈이 원금과 연체이자를 합쳐 40억대 중반. 공매 최저가는 30억까지 내려온 상태. 은행은 이 채권(정확히는 신탁의 우선수익권)을 27억에 매각하겠다고 내놨습니다. 40억대 채권을 27억에 — 은행이 손실을 확정하고 나가는 가격입니다.
사는 쪽에서 보면, 27억을 내고 «이 건물이 팔리면 그 돈을 가장 먼저 받아갈 권리»를 사는 겁니다. 단, 여기에 자격 요건이 하나 있습니다 — 금융기관의 이런 채권은 등록된 대부업체만 양수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정한 조건이 아니라 제도가 정해 둔 자격이라, 어느 은행 채권이든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일반 법인은 실무에서 대부업체를 끼고 수수료를 내는 구조가 됩니다.
⑤ 그런데 채권을 사도 건물은 아직 남의 것입니다
여기가 이 구조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입니다. 채권을 샀다고 소유권이 넘어오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계약서로 확인한 바로는, 소유권을 가져오려면 신탁사와 매매계약을 한 번 더 해야 합니다. 채권자 자격과 매수인 자격, 두 개를 다 가져야 건물이 내 것이 됩니다.
등록 대부업체를 통해서. 이제 «건물값을 가장 먼저 받아갈 사람»이 나다.
거듭된 유찰로 열린 «직전 가격 수의계약». 매매대금은 현금으로 낸다.
신탁사는 매매대금 30억에서 비용을 뗀 뒤 우선수익자에게 배분한다. 우선수익자가 나이므로, 내가 낸 30억이 나에게 돌아온다.
실제로 나간 돈은 채권값 27억과 세금·비용. 등기부에는 30억 매매로 남는다.
돈이 한 바퀴 도는 게 보이실 겁니다. 30억을 내지만 그 30억의 수취인이 나 자신이라, 실제 순지출은 채권값 27억과 취득세·비용입니다. 그리고 실거래가는 30억으로 찍히므로 대출 한도와 나중의 양도차익 계산은 30억 기준이 됩니다. 은행 실무에서 흔히 쓰는 구조인데, 전제가 있습니다 — 계약서 금액과 실제 오간 돈이 일치해야 합니다. 납부와 정산 배분의 증빙이 깔끔하게 남는 것이 이 구조의 안전판입니다.
⑥ 저희가 서류에서 확인한 것들
이 구조에서 «확인 없이 믿으면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번 건에서 전부 서류로 걷었습니다.
첫째, 등기부의 근저당이 살아 있는가. 등기부에 근저당 두 건, 합계 95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말소된 것이었습니다 — 말소된 근저당의 설정 행에는 «말소»라는 글자가 없어서, 말소 행을 따로 찾아 번호를 대조해야 합니다. 이걸 놓치면 선순위가 있는 줄 알고 포기하거나, 없는 줄 알고 물리는 양쪽 사고가 다 납니다.
둘째, 수익권증서의 세 줄. 수익 한도금액, 교부순위, 그리고 «선순위 우선수익자»와 «임대차 등 선순위» 칸입니다. 저희 건은 교부순위 1순위, 선순위 임대차 0원이었습니다. 이 칸에 숫자가 있으면 그만큼 내 앞에서 돈이 빠져나갑니다.
셋째, 전입세대와 상가임대차. 전입세대확인서에서 세대주 0, 관할 세무서에서 등록 임차인 0을 확인했습니다. 신탁 물건은 수탁자 동의 없는 임대차가 보호받지 못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건 원칙이고, 사람이 점유하고 있으면 명도는 별개의 일입니다.
⑦ 이 구조의 함정 세 가지
첫째, 현금이 두 겹으로 듭니다. 채권값 27억 따로, 매매대금 30억 따로입니다. 매매대금은 정산으로 돌아오지만 시차가 있습니다. 그 사이를 버틸 자금 계획이 없으면 이 구조는 시작하면 안 됩니다.
둘째, 채권만 사놓고 있으면 건물을 뺏길 수 있습니다. 공매는 계속 열려 있어서, 남이 30억에 낙찰하면 건물은 그 사람 것입니다. 나는 배분 30억을 받으니 손해는 아니지만 건물을 사려던 목적은 실패합니다. 반대로 예정가격이 내 채권 매입가 밑으로 내려간 회차에 남이 채가면 그때는 진짜 손실입니다. 채권을 샀으면 매수까지 반드시 완주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셋째, 취득세가 튈 수 있습니다. 과밀억제권역에서 설립 5년이 안 된 법인으로 취득하면 중과 대상이 되고, 건물 용도에 따라서도 세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희 계산에서도 취득 명의를 어느 법인으로 하느냐로 1억이 갈렸습니다. 계약 전에 세무사에게 명의부터 확정받아야 합니다.
유찰이 쌓인 물건이 싸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곱 번 유찰됐다는 건 그 가격에도 살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싸게 사는 구조를 아는 것과, 싸게 사도 되는 물건을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희도 이 구조를 검토하면서 영업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를 매출 데이터로 따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⑧ 정리
은행에게 이 구조는 1년 걸릴 공매를 건너뛰고 오늘 손실을 확정하는 출구이고, 사는 쪽에게는 감정 50억 자산을 30억 언저리 원가에 가져오는 입구입니다. 서로의 사정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채권이 거래됩니다. 다만 그 입구에는 신탁계약서·수익권증서·등기부·전입세대라는 네 개의 자물쇠가 있고, 하나라도 안 열어보고 들어가면 싸게 산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산 것이 됩니다.
숙박 공매 662곳 중 76%가 다섯 번 이상 유찰됐고, 그 끝에서 은행은 건물 대신 채권을 팝니다. 채권을 사고, 수의계약으로 매수하고, 낸 돈을 정산으로 돌려받는 — 돈이 한 바퀴 도는 구조를 이해해야 이 시장의 가격표가 읽힙니다.
검토 물건이 특정되지 않도록 지역·상호를 밝히지 않고 금액은 반올림했습니다. 가격 체감률·명도 조항 등 신탁공매의 규칙은 신탁계약마다 다르므로 반드시 해당 계약서로 확인해야 합니다. 세무·법률 사항은 일반적 설명이며 개별 사안은 전문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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